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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 bee
내가 하고 싶은거 본문
오늘 아침, 버스에 타면서 문득 감성에 젖었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주마등처럼 지난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군대가 이제 정말 눈앞까지 다가온 것 같았다.

그래서 군대에 가기 전에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면 이 글도 나중에는 하나의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누군가를 지키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후에는 크리에이터, 편집자, 배우, 고고학자, 탐험가, 여행가이드, 프로그래머 등 하고 싶은 일이 계속 바뀌었다. 어릴 적 나는 하고 싶은 공부도, 해보고 싶은 일도 참 많았던 것 같다.
중학교 때의 나는 암기과목을 정말 싫어했다. 어쩌면 아직도 영어를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수학은 교과우수상도 받아봤고, 어느 정도 중위권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살던 지역이 공주였기 때문에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다. 공주고는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분위기였고, 특성화고 쪽에는 소방 관련 고등학교도 있었지만 당시 인식 때문인지 크게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학교 2학년 때, 한 형이 마이스터고를 추천해줬다. 그 형은 내게 “너 컴퓨터 좋아하지? 마이스터고 와서 기능반 해봐”라고 제안했다.
당시 나는 코딩을 할 줄도 몰랐고, 컴퓨터를 엄청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님이 컴퓨터를 사주실 때마다 마인크래프트 복돌판이나 이것저것 설치하다가 거의 1년에 한 번씩 컴퓨터를 고장 내는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중에는 컴퓨터를 잘 안 사주셨던 것 같다.
어렸을 때 키즈짱 시장놀이 같은 플래시게임을 좋아해서 그런지,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던 동기도 단순했다. 동심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역 특성상 갈 만한 곳은 마이스터고였고, 기능대회에서도 명문이라는 점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던 개발 쪽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지만, 그래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IT 네트워크/클라우드컴퓨팅 동아리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배웠던 내용들은 정말 재미있었다. 서브네팅부터 라우팅, 리눅스까지 책을 통해 하나씩 알아가고,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면서 성취감을 느꼈다. 단순히 암기하는 것보다 문제 자체를 풀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1학년 중반쯤 클라우드컴퓨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원래 3명이었던 클라우드컴퓨팅 동기가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같은 층에 있던 IT 동기들도 3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나간 친구들은 집이 학교와 멀거나 전기 쪽으로 진로를 정하려는 친구들이었다.
학교는 전기전자과였지만, 나는 처음부터 기능부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전기전자 수업 시간이 길게 느껴졌고, 점점 싫어졌던 것 같다. 결국 전기전자나 교과과목을 많이 던져버렸고, 그 때문에 혼도 많이 났다.
기능부는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나는 항상 기숙사에 제일 늦게 들어갔다. 그냥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전설의 포켓몬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대회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방학과 주말까지 전부 기능부에 할애했다. 이때는 클라우드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인프라를 설계하고 세팅하는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당시 클라우드컴퓨팅 대회는 과제가 공개되지 않고 당일에 출제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아키텍처를 검색하고, AWS Workshop, Stack Overflow 등을 참고하면서 직접 세팅을 시도했다. 전년도 과제들도 반복해서 풀면서 감각을 익혔다.
그 시기에는 다른 학교에서 우리 학교로 전지훈련을 온 학생들도 있었고, 자연스럽게 인맥도 생겼다. 나는 내가 알게 된 내용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해서, 계속 가르쳐주거나 자료를 나눴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기능대회에서 경쟁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성장하고 싶었다. 어차피 다 공유해도 결국 뛰어난 사람이 입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 가치관 때문인지 2학년 중반에는 직접 문제도 만들어보고, 자료도 찾아보고, 여러 번 검색하며 공부했다. 하지만 당시 대회 결과는 딱히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이후에도 계속 무언가를 설계하고, 아키텍처를 만져보며 시간을 보냈다. 주말과 방학도 마찬가지였다.
고3 때는 클라우드를 계속 하면서 조금 번아웃이 왔다. 원래 나는 동심 속에 있던 추억을 살리고 싶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다른 친구들처럼 정규시간에 수업을 듣고 싶고, 기숙사에 빨리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때 개발을 시작하려고 했다. 기능반을 나갈 생각도 했지만, 이미 3학년이 된 시점이라 나가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느꼈다. 그래서 거의 시위하듯 생산자동화기능사 의무검정을 신청했다. 대회 기간에 생산자동화기능사를 따겠다고 실습에 들어가서 솔리드웍스와 PLC를 했는데, 그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
물론 평판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 재미를 느꼈다. 당시에는 대회를 치르지 않으려고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깃도 해보고, 여러 회사에 지원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때 분위기는 “대회 치르면 삼성 갈 수 있는데 뭐 하냐”에 가까웠다. 나 역시 클라우드로 취업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동시에 개발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어떻게든 빨리 탈출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이후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고, 삼성 채용 전에 여러 기업에 지원해 면접 볼 기회도 생겼다. 하지만 당시에는 다시 삼성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래서 인사담당자의 연락처를 차단하고 면접 준비에 집중했다. 입상자 대상으로 대만에 보내준다는 기회도 포기하고, 학교 친구들과 함께 면접 준비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결국 스무 살 이후 한 기업에 SE로 입사하게 되었다.
회사생활을 1년 정도 하면서, 내 과거의 이상과 현실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지식을 제대로 써먹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클라우드를 하며 인프라 설계도 많이 해봤지만, 실제 대부분의 회사는 서버 규모가 크지 않았고, 그 점에서 회의감이 들었다.
바로 퇴사하고 군대에 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취업지원제도 1년, 최소 1년 이상 경력을 채워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여러 현실적인 조건들이 나를 붙잡았다. 이후 병역특례에 편입되었지만, 회사에서 내가 생각한 만큼의 가치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퇴사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결국 부트캠프에 합격하고, 거의 도망치듯 이동한 것 같다. 코딩 인맥도 만들고, 함께 성장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부트캠프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개발을 접하게 되었다. 알고리즘도 풀어보고, AI 지식도 배우고, 프로젝트도 경험했다.
느낀 점은 예전보다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취업에 집중하는 곳이다 보니, 자유보다는 시험과 프로젝트 중심의 분위기도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부트캠프 경험을 통해 미래의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점점 확고해진 것 같다. 처음 부트캠프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개발을 배우고 싶었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싶었고, 처음부터 다시 성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니면서 고졸이라는 딱지가 싫게 느껴지기도 했고, 조직 구조에 대한 의문도 생겼다.
조직은 과연 완성된 인재만 뽑고, 반복적인 문서작업과 같은 스택의 기술만 시킬까? 새로운 기술 스택을 맡긴다면 교육기간을 충분히 줄까? AI가 짜지 못하는 코드는 누가 작성할까? 힘과 권력으로 하청에 떠넘기게 될까?
이런 의문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군대를 최대한 빨리 가고, 이후에는 대학에 가서 프리랜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마케팅도 그래서 했던 것 같다. 공모전에서 수상해서 프리랜서를 하기 전에 인지도를 먼저 쌓자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실패했고, 결국 빨리 군대에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나는 해군 취업맞춤특기병 전산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배를 탈 수 있다면 최대한 타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세상과 어느 정도 격리되고, 스마트폰이 잘 안 되는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디지털 시대보다 아날로그적이고 날것의 감성을 느끼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해군은 밥이 맛있다고 한다. 나는 밥맛으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해군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분명히 있다. 가끔 해외로 갈 기회도 생긴다고 하니, 그 기회도 잡고 싶었다. 그리고 배에 타면 정말 항해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군에 가면 공부할 기회도 많고 쉬는 시간도 많겠지만, 내가 안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 해군은 주말까지 일한다고 하니, 차라리 일이라도 열심히 하고, 군적금도 많이 받고,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 지내고 싶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할 것도 없으니 영어공부도 하고, 도파민 디톡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해외에서 일하거나, 대학에 가거나, 연구원이 되고 싶다.
하지만 한 가지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도 다양한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해보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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